대학생 선플기자단 3기 박선영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며 일반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들을 실제로 혹은 매체를 통해 자주 접하고 있다. 하지만 관용이 많이 줄어든 각박한 사회에서 작은 일에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며 혐오하는 일도 잦아졌다. 이런 세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노키즈존’이다.

우리는 식당, 카페 등 여러 가게의 입구에 노키즈존(No kids zone) 딱지를 붙여 놓은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노키즈존은 영유아와 어린이를 동반한 고객의 출입을 제한하는 업소를 가리키는 신조어다. 이와 같은 업소들은 성인 고객을 배려하는 동시에 영유아 및 어린이들로부터 발생하는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출입을 제한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영업상의 자유이면서 개인의 자유이기 때문에 노키즈존에 대해 비난할 수 없다는 견해와 영유아를 잠재적 위험 집단으로 여기며 방문을 차단한다는 점에서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견해가 대립한다.
노키즈존에 찬성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교보문고 식당가 사건이 있다. 2012년, 한 SNS에 자신의 아이의 얼굴에 화상을 입힌 가해자를 찾아달라며 억울함을 호소한 글이 올라왔다. 그 글엔 한 여성이 고의로 아이의 얼굴에 뜨거운 국물을 부어버린 것처럼 묘사되어 있었고, 많은 네티즌들은 이 사실에 분개하며 가해자로 지목된 여성에게 많은 비난을 보냈다. 하지만 CCTV 영상이 공개되면서 상황은 급반전을 맞았다. 가해자로 지목된 여성이 아이에게 국물을 고의로 쏟은 것이 아니라 아이가 먼저 해당 여성 쪽으로 뛰어오다가 부딪힌 것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아이들과 보호자들을 불법 촬영하여 SNS상에 사진을 올리는 등 상황의 전후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네티즌들의 비난을 의도적으로 유도해내는 경우도 많았다. 또, 노키즈존의 위치를 알려주는 노키즈존 맵이나 리스트를 제작하거나 기업에서 아예 자체적으로 노키즈존을 설정하는 등 아이들을 사회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은 어떠한 문제의식이 제기되지도 않고 발생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노키즈존은 ‘차별’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매체를 통해 접하는 빈번한 민폐 사례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것을 일반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동 및 보호자의 업소 이용을 전면 차단하는 것은 우리가 보는 일부 사례를 명백한 근거 없이 일반화한 것이다. 즉, 위의 사례처럼 다른 주변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아이들과 보호자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모든 아이들과 보호자가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아이들을 피해를 주는 대상으로 일반화할 수 없는 것이다.
또, 노키즈존은 또 다른 차별과 배제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키즈존은 아동을 배제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여러 집단을 배제하는 등 여러 사회적 차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노키즈존은 또 다른 혐오를 가져왔다. 몇 년 전부터 온라인상에서는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자녀를 가진 엄마들을 가리키는 단어로 ‘맘충(엄마를 뜻하는 ‘Mom’과 벌레를 뜻하는 ‘충’ 합성어)’이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는 단지 영유아 자녀를 가진 엄마들에 대한 혐오적인 단어에 그치지 않고 여성에 대한 혐오로까지 확장되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일부 ‘맘충’이라고 지목된 엄마들의 행동은 일반화될 수 없다. 소수의 사례가 크게 부각될 뿐, 모든 엄마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맘충’이란 단어는 아동혐오에서 확장된 여성혐오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모든 여성들을 ‘맘충’이라고 칭하며 혐오가 확장된 것을 볼 수 있다. 즉, 또 다른 집단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이미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혐오는 무한하게 확장한다. 왜냐하면, 현대 사회 사람들은 나와 다른 사람들을 혐오하는 데에 열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혐오 집단을 언제든지 생성할 수 있다. 이것은 언젠가 ‘나’ 또한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어렸을 적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사회 규범을 적절히 준수하고 올바른 행동만 해왔는가? 아니다. 우리는 어렸을 적 모두 호기심이 많았고 그에 따른 시행착오를 겪었으며, 가끔 사소한 난동도 부렸다. 또 어쩔 때는 말썽꾸러기처럼 굴어 우리의 보호자들을 당황시킬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우리는 마치 처음부터 성숙했던 것처럼 행동한다. 말썽을 부리는 아이들을 보고 혀를 차고 비난한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다루는 데 어려움을 겪는 보호자들까지 비난한다. 뿐만 아니다. 우리가 아직 살아보지 않은 세대 즉, 좀 더 어른 세대에 대해선 고리타분하고 융통성이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바라본다. 하지만 사실은 그 어른 세대는 곧 우리가 가야하고 거쳐야 하는 길이다.
우리는 어떻게 혐오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방법은 ‘나’를 돌아보고 남을 ‘나’로 인식하는 것이다. 사소한 난동을 부리는 아이들을 보며 ‘나’의 어릴 적을 생각해보고, 그 아이들에 당황하는 보호자들을 보며 ‘나’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생각해보고, 고리타분하다고 느껴지는 윗세대를 보며 ‘나’를 반성하는 것이다.
| ‘한남더힐 OOO’과 ‘플렉스 문화’에 대한 고찰 (539) | 2021.06.29 |
|---|---|
| 미국 연방공휴일로 지정된 노예해방일 (532) | 2021.06.29 |
|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다문화 사회가 되려면 (642) | 2021.06.28 |
| 디지털 탄소발자국 (768) | 2021.06.12 |
| 국가들은 악플에 어떻게 대응할까? (757) | 2021.06.12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