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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적시 명예훼손 비범죄화 논의에 관하여

악플혐오 VS 선플

by 코끼리코라우 2021. 5. 23.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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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적시 명예훼손 비범죄화 논의에 관하여
법익으로서의 명예: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 그리고 사적 제재의 문제

선플기자단 김 건

 

 올해 2월,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2017헌마1113)으로 우리 형법에 그대로 존재하게 된 사실 적시 명예훼손이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이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법 조항이다. 이는 단순히 사실을 공표하는 것일 뿐이라는 명목으로 타인의 약점을 폭로하여, 명예를 악의적으로 훼손하는 경우로부터 부당한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신체적·지적 결함이나 개인의 사적 영역을 폭로하는 등 악의를 가지고 타인의 약점을 폭로하는 행위를 규율하기 위해 해당 법 조항이 필요함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피해자의 권리 구제를 위한 수단으로써 사실이 폭로되었을 때 문제가 된다. 

이와 관련하여 앞서 ‘개인의 실존 조건으로서의 명예 관념’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다. 사회구성원으로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보장받는 것은 의사소통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민주사회에서 핵심적인 권리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명예란 타자와의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삶의 전제조건이 된다. 그러므로 명예를 훼손하여 어느 한 개인을 사회와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단절시킴으로써 ‘실존적 삶’을 박탈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현대사회에서의 자신의 존재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특히 인터넷 공간이 현실 세계 이상의 삶의 터전이 되어, 급속하고도 광범위한 정보의 교환이 이뤄지는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한 개인을 사회에서 매장하는 것의 치명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법은 명예를 개인의 실존 조건으로 보고 이를 우선적으로 보호하고자 한다. 피해자의 권리 구제 역시 중요하지만, 명예는 개인의 실존이 달린 문제라는 것이다.
(지난 기사: [법 돋보기①] 사실 적시 명예훼손 비범죄화 논의에 관하여   https://sun38.tistory.com/197

 

[법 돋보기①] 사실 적시 명예훼손 비범죄화 논의에 관하여, 사실이라도 명예훼손이 성립한다?

[법 돋보기①] 사실 적시 명예훼손 비범죄화 논의에 관하여. 사실이라도 명예훼손이 성립한다? 개인의 실존 조건으로서의 명예 대학생 선플기자단 김 건 지난 2월, 형법 제307조 1항, ‘사실 적시

sun38.tistory.com

 

우리 법은 모든 사회구성원을 보호해야 하는바, 사실 적시 명예훼손은 여전히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 사이에서 법익 형량 문제를 안고 있다(법익 형량이란 보호받아야 할 법익 중 어느 것을 우선하여 보호해야 하는지를 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표현의 자유 역시 민주사회에서 보호받아야 할 핵심적인 권리이며, 앞서 살펴본 대로 인격권만을 과하게 옹호하는 것은 자칫 피해자의 권리 구제를 막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과 관련하여 우리 법이 각각의 법익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살펴보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이 문제에 대해 자신만의 관점을 적립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사회의 핵심적 권리,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에 관하여

 사실 적시 명예훼손의 비범죄화에 대한 가장 강력한 논거는 이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실을 밝히는 행위만으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다면 해당 조항의 광범위한 적용은 기본권의 위축을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타인의 권리를 무시한 채 표현의 자유가 남용되어서도 안 되지만, 원칙적으로 표현의 자유는 정신 활동의 기본권에 해당한다. 

 개인의 인격권과 표현의 자유에 따른 법익을, 따라서 정밀하게 비교·검토하여야 한다. 우리 법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명예가 개인의 실존 조건이 될 수 있다는 점, 다변화된 정보 유통 경로와 광범위한 인터넷 환경이 구축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특수성 등을 들어 인격권이 우선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폭로를 통해 사회적 매장이 시도되면, 그 파급력이 매우 크므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법은 사실 적시 명예훼손이 침해의 최소성을 충족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지 않는다고 본다. 법 조항(형법 310조)과 법원 판례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사실 적시’는 처벌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해당 조항이 존재하더라도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우려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범죄피해를 구제받기 위해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가 공익적 목적이었음을 증명해야 하는 ‘입증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여전히 법이 부당하다고 비판한다.

 알 권리 또한 사실 적시 명예훼손 폐지의 주요 근거다. 사회구성원들의 의사소통 참여와 공론장을 위해서 알 권리는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알 권리는 사회구성원이자 참여자로서 올바른 의사를 형성하는 데 주요한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우리 법은 이에 대해 알 권리의 본질적 의미를 강조하여 반박하고 있다. 알 권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든지 특정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권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의사 형성을 거쳐 의사표시로 나아가는 것이 기대되지 않는 앎’까지도 법이 보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병원의 사례’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수술을 받게 될 환자는 의사로부터 수술에 대한 비용과 성공 확률, 부작용 등을 모두 고지받을 권리가 있다. 환자는 그러한 앎을 토대로 수술을 받을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된다. 올바른 의사 형성과 결정을 내려야 하는 주체이자 당사자로서 환자에게 수술 정보를 알 권리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같은 입원실을 사용하며 옆에 누워있는 사람은 옆 사람의 상태와 수술에 대한 정보를 알 권리가 없다. 이른바 ‘알 권리’와 ‘단순한 호기심’은 엄연히 다르다. 따라서 호기심을 권리로 혼동해서는 안 되며, 이를 법적 의무, 헌법적 기본권으로 격상시키는 것은 더더욱 안 된다. 이에 알 권리 역시 사실 적시 명예훼손의 폐지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우리 법의 입장이다.

법적 장벽과 사적 제재의 문제

 한편, 앞서 살펴본 기본권 이외에 중요한 문제는 역시 피해 사실을 사회에 알리는 방식으로 행해지는 피해자의 권리 구제 문제이다. 현실적으로 피해자가 자신의 권리를 보호받기 위해 행동을 취하기에는 법적 장벽이 높다는 것이다. 주로 사실 적시 명예훼손이 사회적 이슈가 되는 배경은 성폭력 피해자나 의료 사고 등으로 가족이 사망한 유족과 같이 심각하게 법익을 침해당한 피해자가 그 사실을 사회에 알리면서부터이다. 

 피해자의 권리 침해가 상당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법적 대처만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구제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법의 구제를 받기까지 너무나도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거니와, 일상을 살아가는 일반 시민들에게 사법적 도구는 매우 낯설고 두려운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사회에 피해 사실을 알리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으로도 보인다.

 법적 장벽이 높지만, 여전히 폭로와 매장은 용인될 수 없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이 금지하고 있는 행위는 사적 제재(私的 制裁)에 해당한다. ‘사적 제재’란 현존하는 공권력이나 사법 체계의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개인이나 집단이 사적으로 단죄 또는 처벌을 결정·집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이러한 ‘임의적 정의’는 엄연히 금지된다. 법체계에 의존하지 않고 임의 판단이 이뤄지는 사적 제재와 정해진 법률에 따라 저지른 죄에 합당한 만큼의 처벌을 받는 법치는 양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작년 불거졌던 ‘배드파더스’와 ‘디지털 교도소’ 논란을 생각해볼 수 있다. 사법기관에 대한 불신과 정의를 실현한다는 통쾌함에 일부 누리꾼들은 열광했지만, 도 넘은 법적 절차 무시로 결국 물의를 빚었다. 디지털 교도소가 엉뚱한 동명이인이나 실제로는 혐의가 없었던 이들을 성범죄자로 낙인찍으면서 무고한 자살 사건까지 벌어진 것이다. 배드파더스 운영진의 경우 공익적 목적을 인정받아 무죄를 선고받긴 했으나, 여전히 민간의 임의적 신상 공개에 대해 논란이 거세다. 이처럼 사적 제재는 절차가 무시되고 결과 역시 오판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결코 용인될 수 없다.

 우리 법은 권리 구제 문제는 어디까지나 일상적 언어가 아닌 법적 작용을 통해야 한다고 본다. 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규율하지 않는 것은, 다름 아닌 형법이 편견과 직관을 앞세운 임의 판단을 통해 특정인을 생활 터전에서 몰아내도 좋다는 메시지를 우리 사회에 전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막중한 권리 침해를 동반하는 불확실한 제재 수단이 인정되는 순간, 법치라는 기본 원칙은 어김없이 흐려진다.

좋은 폭력이란 있을 수 없어

 이상으로 우리 법이 사실 적시 명예훼손 폐지의 주요 논거들에 대해 어떤 관점을 취하고 있는지 확인해보았다. 물론 우리 법의 논리가 공고하다고 해서 피해자들의 2차 피해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 법은 공익의 우선성이나 법익침해 등에 대한 광의의 판단 여건을 마련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인격권과 실존적 명예를 보호하면서도, 표현의 자유와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방법, 명예훼손을 추상적 위험범이 아닌 구체적 위험범으로 분류하는 방법(실질적으로 명예가 실추되는 등 법익이 침해된 경우만 명예훼손으로 인정), 형법이 아닌 민법(징벌적 손해배상 등)이나 정보통신망법 등의 법률을 통해 제한적으로 명예훼손죄를 규율하는 방법 등이 논의되고 있다.

 우리 법은 좋은 폭력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좋은 폭력을 긍정하는 순간 폭력에 대해 우리 사회가 확립한 컨센서스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통상적으로 폭로는 피해의 구제를 위한 최후수단의 기능만을 수행하지 않는다. 피해를 입은 당사자는 해를 입힌 사람을 사회에서 속편히 지낼 수 없도록 만들어야 후련해질 것처럼 느낄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해 ‘악행을 알려 매장시키는’ 방법이 더 크고 만족스러운 효과를 얻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에서 매장하겠다는 악의와 이전의 피해 사실은 별개의 문제다. 피해자에게는 잔인하지만, 공론화라는 말의 이면에는 세력 형성과 소외라는 함의가 들어 있다.

 법이란 사회구성원 모두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며 편향됨이 없이 공정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로서, 사회질서의 근간이자 사회 운영의 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법은 중요하며, 복잡하고도 어렵다. 사회구성원들의 적극적 참여가 절실하지만, 동시에 개방적으로 모든 주장을 우리 법에 포섭할 수 없는 이유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법이 사회구성원 전체의 목소리를 반영해 갱신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특정 단면과 사법계의 불신만을 토대로 논의가 이뤄져서는 안 된다. 보다 이성적인 자세를 함양하여 시민들의 관심과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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