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법 돋보기①] 사실 적시 명예훼손 비범죄화 논의에 관하여, 사실이라도 명예훼손이 성립한다? 개인의 실존 조건으로서의 명예

자연과학

by 코끼리코라우 2021. 5. 14. 14:50

본문

반응형

[법 돋보기] 사실 적시 명예훼손 비범죄화 논의에 관하여. 사실이라도 명예훼손이 성립한다? 개인의 실존 조건으로서의 명예

 

대학생 선플기자단 김 건

 

지난 2, 형법 제3071, ‘사실 적시 명예훼손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이 나왔다(2017헌마1113).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면 처벌하도록 규정한 형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헌재는 오늘날 매체의 다양화로 명예훼손적 표현의 전파 속도와 파급 효과가 광범위해지고 있고, 명예가 일단 훼손되면 완전한 회복이 어려운 점 등을 볼 때 명예훼손적 표현 행위를 제한해야 할 필요성은 더 커졌다.”고 판시했다.

헌재는 또,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되는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의 민사적 구제 방법만으로는 형벌과 같은 예방 효과 등을 확보하기 어렵다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을 고려해 심판대상 조항을 전부 위헌으로 결정한다면, 진실에 부합하더라도 개인이 숨기고 싶은 병력·성적 지향·가정사 등 사생활의 비밀이 침해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유남석, 이석태, 김기영, 문형배 재판관은 해당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소수 의견을 달았다. 이들은 진실한 사실을 토대로 토론과 숙의를 통해 공동체가 자유롭게 의사와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근간이므로, 진실한 사실 적시 표현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이에 반할 수 있다며 반대급부의 의견을 밝혔다.

한편, 최근 온라인상에서의 명예훼손 사건 등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면서 해당 결정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더불어 높아지고 있다. 작년 사적 제재논란으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배드파더스디지털 교도소문제 역시 같은 선상에서 논구되고 있다. 누리꾼들은 대체로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법 조항이 역으로 피해자들의 권리를 가로막는 족쇄가 된다며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이번 헌재의 합헌 결정으로 인해 사실 적시 명예훼손은 우선은 우리 형법에 그대로 잔류하게 되었다.

사실을 공표해도 죄가 된다니대체 왜?

사실 적시 명예훼손이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형법 조항이다. 이는 단순히 해당 내용이 사실이라는 명목으로 타인의 명예를 악의적으로 훼손하여 부당한 피해를 주는 것을 방지하고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권리를 지켜주기 위함이다. 그러나 범죄피해자가 권리를 되찾기 위해 우리 사회에 목소리를 내려고 하면, 해당 조항이 그들의 발목을 잡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국민적 법 감정과의 간극이 발생했다. 무엇보다 명백한 사실을 고하더라도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주류적인 입장이다.

그렇다면 우리 법은 왜 이러한 조항을 통해, 사실을 적시하는 것 역시도 경우에 따라서는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하는 것일까? 이 문제를 둘러싸고 복잡하고 다양한 논의들이 전개되고 있으나, 쉬운 예를 통해 해당 법 조항의 존재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이를테면 장애인에 대해 비하 발언을 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신체적·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그 결함을 무기로 인신공격을 한다면, 이것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공표한 행위이지만 그 의도는 명백히 상대방의 인격을 훼손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명예훼손은 사실인지 아닌지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격권의 침해 여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물론 명예훼손을 손해배상 등의 방식으로 민법이 포섭해야지, 형법의 적용대상으로 볼 것은 아니라는 등 법적 규율방식에 대한 첨예한 대립이 나타나고 있다. 또 인격권과 표현의 자유라는 양립 불가능한 권리 사이에서 이익형량(두 법익 중 우선적으로 보호되어야 할 법익을 판단하는 행위)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 다만 공연한 사실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침해될 수 있는 인격권이 존재하고, 이를 강력한 형벌제재를 통해 보호해야 한다는 점에서 해당 조항의 취지를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명예의 보호와 개인의 실존

그렇다면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앞서 제시한 이익형량의 문제일 것이다. 기본권 중 하나인 인격권과 민주주의의 근간이 될 수 있는 표현의 자유 사이에서 어떠한 법익을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하는가가 문제가 된다. 헌법재판소에서 재판부의 의견이 54로 갈린 것을 비추어 보면, 이는 쉽지 않은 문제이다.

한편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위스는 사실 적시 명예훼손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며, 미국의 46개 주는 명예훼손죄를 폐지하였다. 20113월 유엔 인권위원회와 201511월 유엔 산하 ICCPR에서는 우리나라에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두 차례 권고한 바 있다. 자명한 사실을 알림으로써 자신이 침해당한 권리를 알리고, 보호받고, 부당하다 목소리를 내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피해자의 권리 구제와 표현의 자유라는 핵심적 가치를 중요하게 보고 있기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 결국 사실 적시 명예훼손을 인정하게 된 근거는 무엇일까?

우리 법에서는 명예관념을 사회구성원으로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개인 실존의 문제와 맞닿아있는 중요한 문제로 보고 있다. 20세기 중엽 이후, 푸코와 하버마스를 비롯한 여러 사상가들은 의사소통에 대한 참여 및 그 능력이 사회를 주도하는 권력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사회구성원으로서 소통행위를 주도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며, 사회구성원으로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보장받는 것을 민주사회 구성원으로서의 핵심적 권리이자 힘으로 본 것이다.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모습은 이처럼 넓은 의미의 상호작용으로서의 관계성 속에서 이루어지므로, 일상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주변 세계와 공존하는 것은 개인이 실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명예는 타자와의 관계를 계속 이어가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삶의 전제조건을 의미하게 된다. 바꿔 말하면, 명예를 훼손하는 일은 어느 한 개인을 그를 둘러싼 사회라는 공간과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되게 만듦으로써 실존적 삶을 박탈하는 행위이다. 그것이 사실이든 그렇지 않든, 어떠한 폭로로 인해 이른바 사회에서 매장되어 소통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잃고 소통의 장으로부터 소외된다면, 그 사람은 현대사회에서의 자신의 존재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개인의 실존적 토대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인격권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의 명예훼손 처벌이 그 필요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 사실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인격권의 침해 여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법익 보호의 딜레마, 여러분들의 생각은

익히 알고 있듯, 사회적으로 법적 규율에 대한 불신과 비판의식이 팽배해 있다. 사회적 통념에 한참 벗어나 있는 범죄에 대해 일반 시민의 관점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터무니없는 형량이 선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이 피해자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도리어 범죄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것이 주된 인식이다. 작년에는 이러한 반감이 극에 달해 판새(판사 X끼의 준말)’라고 하는 혐오 표현까지 생겨났다. 법은 어디까지나 사회구성원들의 합의인 바, 이와 같은 시민들의 목소리와 법 감정에도 귀를 기울여 제도적 개선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머리는 차갑되, 가슴은 뜨거운 법조인이 요구되고 있다.

다만, 여전히 지나치게 급진적인 사고는 섣부르다. 때때로 사실을 밝히고 피해를 알리는 행위를 방해하는 사실 적시 명예훼손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를 고민해보면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가도, 위의 신체적·정신적 결함이 있는 사람들의 법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설명만으로도 그 필요성이 이해되고 설득되는 것이다. 또 인터넷 공간이 현실 세계를 능가하는 삶의 배경이 되어, 급속하고도 광범위한 정보의 교환이 이뤄지는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한 개인을 사회에서 매장하는 것의 치명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참여가 중요시되는 현대사회에서의 박탈과 소외라는 문제는 더더욱 조심스럽다.

지면을 할애하여 이처럼 사실 적시 명예훼손의 필요 근거를 제시한 이유는 한쪽의 입장에서 해당 조항이 필요함을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잡한 법익 보호의 딜레마를 함께 고민해보기 위해서이다. 이와 관련하여 후속 기사를 통해 우리 법이 표현의 자유알 권리대신 인격권을 택하며 침해의 최소성을 인정한 근거에 관해서도 소개하고자 한다. 민주사회의 구성원이자 참여자로서, 요즘 화두인 명예훼손에 대해 넓은 시야에서의 고민과 함께 각자의 견해를 정립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아가 법이 수행해야 할 역할에 대해서도 폭넓은 시각에서 자신만의 견해를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