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선플 기자단 양정아
[독일의 경우 술에 취해 범죄를 저지를 경우, 감형의 사유가 아니라 오히려 범죄자의 과실을 인정하는 사유로 인정됩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주취감형의 사례가 적용되어 국민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술을 마신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그 당시 시비를 변별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저하되었다고 판단해 형벌을 감형해주는 주취감형은 여러 사건에 적용되며 국민의 분노를 일으킨 제도이다. 주취감형 제도가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었던 것은 2008년에 일어난 조두순 사건이 대표적이다. 재판 당시 1심 법원에서 선고한 15년 형이 2심에서 조두순이 범행 당시 술에 만취한 상태로 심신미약을 인정하면서 12년 형으로 감형되었다. 조두순 사건 외에도 사회적으로 주목받았던 잔혹한 사건들에 있어 주취를 이유로 낮은 형을 선고받는 경우가 계속해서 이뤄졌고 여전히 많은 범죄자가 범행 사실을 부인하거나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술김에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주취감형은 현행법상 어떻게 규정되어 있는가
현행법상에 주취감형이라고 명시되어 있는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주취감형의 근거가 되는 ‘심신미약’에 대해선 형법 제10조 제2항에 규정을 두고 있다. 제2항에 따르면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2018년도 이전까지는 ‘형을 감경한다’ 하여 강행규정으로 존재하였으나 이후 ‘감경할 수 있다’로 개정하여 법관의 판단에 따라 감형 여부를 결정하게 되었다. 또한, 주취감형 문제가 심각했던 성범죄 사건에 대해서도 성폭력 특례법 제20조에 따라 음주 성범죄에는 감형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등 보다 강화된 상태이다.
심신미약에는 통상적으로 지적장애, 조현병, 음주 및 마약과 같은 약물복용 상태 정도가 인정받아 왔다. 심신미약의 판단은 의학적 감정과 전문가의 소견, 범행의 계획성과 범행 이후의 과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뤄지나, 음주에 있어선 정확한 음주측정 없이 피의자 진술과 주변인들의 증언에 의존해 판단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그 신뢰도가 비교적 떨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주취 상태가 감형의 고려대상으로 계속해서 인정되고 있는 것은 형법상 책임주의 원칙에 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형법은 인간의 ‘의사결정의 자유’에 주목해 달리 행위 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범죄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위법한 행위를 한 것에 비난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책임주의 원칙을 따른다. 반대로 행위자가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할 기대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는 그 책임이 없다고 보는데 술에 취해 ‘제 정신이 아닌 상태’가 바로 이에 해당하는 것이다. 또한, 결과적으로 주취범죄가 일어났더라도 행위자가 음주로 인한 심신장애 상태를 자의로 야기했는지, 당시 범행을 예견할 수 없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주취감형 내용을 일괄 폐지하는 것은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 자의로 술을 마셨어도 범행 의도까지는 없었던 경우가 있을 수 있고, 불가피한 음주로부터 범행까지 이뤄졌을 가능성 등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형법 제10조 제3항에는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행위는 제2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하여 무분별한 주취감형을 제한할 수 있는 규정이 존재하고 있다.
실제 재판에서 주취감형 인정은 드문 것으로 나타나
주취감형이 전적으로 법원의 재량에 따라 판단되는 만큼, 엄정한 사실관계 파악과 법 적용이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주취감형 폐지를 주장하는 입장에선 판사의 자의적 해석에 따라 결국 주취범죄에 대한 감형이 이뤄질 수 있다고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우려와는 달리 실제 재판에서 주취감형 인정은 드물었다. 2018년 대법원 양형위원회와 형사정책연구원이 공동으로 개최한 ‘음주와 양형’ 학술대회에서 ‘음주와 성범죄의 관계’, ‘음주가 선고형량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통계분석을 발표한 바 있다. 통계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성범죄 판결문을 조사한 결과 음주 후 성범죄에 대한 양형은 평균 징역 26개월, 비음주 성범죄는 약 18개월로 음주 후 성범죄가 비음주 성범죄보다 형량이 높은 경향을 보였다. 또한, 살인범죄에 있어서 정신분열증 등에 의한 심신미약 감경이 법원에서 인정되는 비율은 전체 살인 사건 중 12.41%,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감경은 1.1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연구보고서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정신장애 범죄자에 대한 법원의 책임능력 판단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법원에서 심신장애가 쟁점이 된 사건은 1597건, 이 중 1심 재판부가 심신장애로 인정한 사례는 305건으로 19%를 차지했다. 305건 중에서도 알코올 중독을 인정받아 주취감형을 받은 사례는 22건으로 전체 7.2%였다. 즉, 단순히 술을 마셨다고 해서 감형되는 것이 아니라 인사불성 수준의 만취 상태로 본인 행동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심각한 알코올 중독 상황인 경우에 한하여 감형이 인정되는 것이다. 언론에 흉악범들이 주취감형을 주장하고 법원이 이를 정상참작 사유로 받아들인 것처럼 노출되면서 음주는 범죄를 저질러도 선처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야기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주취범죄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갈수록 날카로워지는 만큼 법원 역시 주취감형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취감형, 무조건 폐지가 아닌 실질적인 개선 방향을 모색해야
술을 일종의 기호식품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와 범행을 저질러도 낮은 형량을 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법의식 등은 음주범죄가 갈수록 증가하는데 큰 작용을 하고 있어 양형 판단의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형법상 책임주의 원칙으로 인해 심신미약 감형 규정은 폐지가 어렵다. 따라서 세부적으로 심신미약 상태를 어느 범위까지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하며 현행법상 성폭력 범죄에만 국한되어 있는 주취감형 미적용을 다른 일반 형사사건에서도 충분히 고려될 수 있도록 주취 정도에 따른 양형기준을 명확히 확립하여 법원은 일관된 판단을, 국민에게는 납득할 만한 감형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라 할 수 있는 음주범죄 발생률을 줄이기 위한 노력도 이뤄져야 한다. 더 이상 음주는 감형 사유가 되지 않는다. 이를 악용할 수 있다는 인식은 개선되어야 하며 재범률이 높은 범죄인 만큼 심신미약 대상자(알코올 중독)에 대한 약물치료가 제대로 행해지고 효과적인 재사회화 및 교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법원의 철저한 관리 감독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한국형사정책연구원·양형연구회 공동학술대회-음주와 양형
https://www.kic.re.kr/pubdata/scholarship/Read.jsp?paramNttID=11053¶mPage=1
2. 정신장애 범죄자에 대한 법원의 책임능력 판단에 대한 연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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