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플기자단 2기 최보영
한국 사회에서의 나이가 갖는 영향력
한국 사회에서 자기 자신을 소개할 때 외국과는 사뭇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이름과 함께 나이를 언급한다는 점이 그렇다. 학생일 적에는 무슨 학교 몇 학년 누구입니다, 하던 자기소개가 사회에 나와서는 OO년생, OOO입니다 하는 모양으로 형태만 살짝 달라질 뿐, 본질적으로는 크게 달라지지 않다.
이처럼 사회에 나와서도 반드시 자신의 나이를 함께 소개하는 까닭은, 나이에 관계없이 타인을 이름으로 부르는 문화권과 달리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에 따른 호칭과 존비어 문화가 필연적으로 수반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호칭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암묵적으로 윗사람과 아랫사람, 조언을 해주는 사람과 조언을 구하는 사람, 더 극단적으로 나아가서는 본이 되어야 할 사람과 그를 따르는 사람 등으로 포지셔닝한다. 과거에는 윗세대와 아랫세대가 공유하는 문화, 지식, 가치관의 차이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순기능적인 측면이 돋보이고, 그 효용성이 인정되었다. 그러나 세태가 급변하는 현재에 이르러서는 그 역기능이 더 주목받게 되었다.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의 괴리가 낳는 갈등의 골…
현재 40·50대인 부모 세대와 10·20대인 자식 세대만 해도 그들이 공유했던 문화, 가치관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한 직장을 평생직장으로 삼고, 20대에 결혼을 하고, 성실히 일해서 저축으로 돈을 모아 내 집을 살 수 있었던 기성세대와는 달리, 현 10·20대는 그것이 현재에는 얼마나 현실적으로 뜬구름 잡는 이야기인지 인식하고 있다. 때문에 당연하게도, 이들은 기성세대와는 다른 삶의 방식을 택하고, 또 다른 가치를 추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들은 직장보다는 워라밸을 추구하며 필요에 따라 거리낌 없이 이직을 하고, 결혼과 아이는 불확정적인 것으로 제쳐두고, 주식으로 자산을 불리고자 기회를 노린다. 이전 세대가 바라보기에는 경악할 만큼 불안정한 삶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10·20세대에게 기성세대의 조언은 옛 전래동화를 듣는 것처럼 딴 세상 이야기로 들릴 뿐, 실질적인 조언으로 들리지도 않고, 대체로는 실제로 조언이 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기성세대가 순탄하게 살아왔다는 뜻이 아니다. 이들 또한 어릴 적 정치적, 경제적인 격변기, 성장기를 겪은 만큼, 최선을 다한, 자부심 어린 삶에서 얻은 지식의 보고를 좋은 뜻에서 다음 세대에 전하고자 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지식이 적용되기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너무 빠르게 변했다.
더하여 안타깝게도 이러한 괴리는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 사이의 이해의 간격을 점점 더 넓히고 있다. 청년 세대 사이에서는 중장년층 혐오로, 기성세대 사이에서는 청년혐오로 이어졌다.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가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고 말한 만큼 이러한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 사이의 갈등은 유구한 이야기지만,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나 더 주목받을 만 하다. 10·20세대는 경험하지 못한 몇십 년 전의 이야기로 조언을 하는 기성세대를 '꼰대', '틀딱' 등의 표현으로 비꼬았다.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세대 또한 '요즘 젊은것들은~'으로 시작하는 말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 일쑤다. 서로 각자의 환경이, 시대가 더 고되었다며 불평, 불만을 터뜨리는 것이다.
학생, 아동, 노년층에도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혐오
그러나 이러한 연령에 관련된 혐오는 비단 청년과 중장년층에 국한되지 않는다. 현대 사회는 '혐오의 시대'라는 말이 있을 만큼 혐오가 만연해 있는 형국이다. 중학생은 초등학생을 잼민이, 초딩 등으로 비하하고, 고등학생은 중학생을 중2병으로 조롱하고, 대학생이 되면 또 초중고 학생들을 급식충으로 깎아내린다. 이처럼 몇 살 차이도 나지 않는 그 사이에서도 연령중심주의, 연령 차별적인 혐오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회적 약자층으로 여겨지는 아동, 노년층의 경우에도 예외는 없다. 최근 몇 년간 이슈가 되었던 '노키즈존'(아동의 출입을 제한하는 곳) 또한 아동을 대상으로 한 차별인가 아닌가에 대해 논쟁이 많았지만,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노키즈존'이 차별 행위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선례를 통해 그 범위는 넓고도 다양해지고 있다. 중고등학생들의 출입을 제한하는 노스쿨존, 중장년층을 제한하는 노시니어존 등 특정 진상 손님이 아닌, 그 연령층 전체를 제한하는 가게들이 우후죽순 늘어난 것이다. 또한 노년층의 경우에는, 초고령화 시대로 들어서는 사회의 주된 사회적 약자층임에도 불구하고 청년층이 부양해야 할 짐처럼 여겨지며 경로우대 무임승차 폐지, 노인 투표권 박탈론 같은 주장까지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구분되어야 할 필요…
점점 더 각박해지는 세태, 심화되는 경쟁, 나 하나 살아내기도 바쁘다는 현실 속에서 민폐만 끼치지 않고 살자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더해서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겪는 것 또한 싫어하는 개인주의를 마음속에 품은 사람들이 점차 더 늘어나고 있다. 분명 이러한 개인주의는 무조건 집단을 우선시했던 과거에 비하면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구시대적인 관습을 타파할 수도 있지만, 위와 같이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혼동될 가능성 또한 없지 않다.
인간의 뇌는 본디 비슷한 것들끼리 분류해 카테고리를 만드는 것에 능하지만, 개인의 문제는 개인의 것으로 바라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한 아이가 가게에서 소란을 피웠다고, 그다음에 들어오는 아이도 그럴 것이란 장담은 누구도 하지 못한다. 나는 처음 가는 시설에서 단순히 나이가 같다는, 혹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 것은 부당하고 또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과거에는 어린아이였고,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예외 없이 노인이 된다. 연령차별주의에 따른 세대 간의 갈등을 줄이고, 자신의 행동이 아닌 나이만으로 온당치 못한 대우를 받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과거의 자신이자 미래의 자신을 보는 자세로 상대를 배려하고 또 존중하는 태도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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